안녕하세요. 풀무질입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길을 거닐다보면 푸릇한 초록, 피어오르는 하양, 분홍색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내일이면 지구가 망한대도, 오늘 우리는 따뜻한 햇살에 마음이 사르르 녹습니다. 하지만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은 아무래도 인간만의 것일지도 모릅니다. 3월 23일,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얼룩말 세로가 우리를 벗어나 시내를 돌아다니다 3시간 만에 다시 우리로 돌아갔습니다. 일주일 정도는 이 일로 서울이 시끌시끌 했습니다. 세로의 '탈출'에 있어 수많은 인간들이 왈가왈부 합니다. 또 다른 많은 인간들은 탈출의 주인공, 세로를 보러 세로의 우리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천선란 작가의 소설,『천 개의 파랑』에서 가장 긴밀한 관계의 주체에는 인류가 없습니다. 휴머노이드 콜리와 비인간 동물-경주마 투데이의 관계가 그 어떤 관계보다 질깁니다. 그들의 소통은 인류의 소통 방식과 거리가 멉니다. 촉각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 콜리, 인류의 언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투데이. 그럼에도 ‘진동’이라는 방식을 통해 콜리와 투데이는 소통의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습니다. 콜리와 투데이를 보며 비인간동물과의 소통을 고민합니다. “상상력은 인간과 동물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 낸다... 상상을 하는 존재는 인간이지만, 그 상상의 방향과 범위를 지시하는 것은 동물이다.”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 『동물의 품 안에서』, 포도밭출판사, 2022, p. 85~88.)
『천 개의 파랑』에 등장하는 복희는 수의사입니다. 인간이 버린 유리병에 발바닥이 찢긴 웰시코기 이야기를 꺼내며 이런 말을 합니다. "방법이 하나 있긴 있어요. 인간도 맨발로 다니면 돼요. 그럼 거리는 실내처럼 깨끗해질걸요." (천선란, 『천 개의 파랑』, 허블, 2020, p. 237.) 인간은 꼭 자신의 처지로 대입해야만 다른 존재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걸까요? 복희의 대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정말 맞는 말이고, 맞는 말이라서 더욱 혼란스러웠습니다. 세로의 행보를 버젓이 '탈출'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결국은 세로를 '구경'하러 몰리는 인파와 우리로 돌아간 세로를 두고 탁자 위에서 설왕설래 하는 사람들.
세로의 봄나들이는 세로에게도, 인간들에게도 썩 유쾌하게 남지 못할 듯 합니다. 인간들은 여전히 동물원이라는 기괴한 시스템보다 '세로'에게만 관심이 많습니다. 동물원에 대한 깊은 논의는 여전히 인간 중심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동물원의 주인은 결국은 인간이지 비인간동물이 될 수 없습니다. 애초에 동물원에서 비인간동물의 역할은 구경거리가 되고, 연구소재가 되고, 무엇보다 ‘주어진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간이 관리하고 보존하고 인간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동물원의 주인은 동물’이라고 외친 들, 그 무엇도 바뀌지 않습니다.
자연과 벗하는 삶, 생명 존중, 좋은 말들입니다. 그조차도 결국 인간 중심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비용을 따져서 인간이 자연과 벗하고, 인간이 스스로의 결정으로 생명을 존중합니다. 반려동물도, 가축도,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살아가는 비인간동물도, 인간과 함께가 아니라면 세상에 자리를 허락받지 못합니다. 인간은 비인간동물의 자리를 몽땅 앗아갔고, 이미 망가져버린 비인간동물의 세계에서 존엄한 최후는 더 이상 없습니다. 비인간동물 모두가 ‘당연히’ 맞이해야 할 ‘존엄한 삶'과 '존엄한 죽음’은 이 현대에는 멸종했습니다.
문득, 세로는 인간 세상에 내리쬐는 봄볕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을지, 자신의 자리라고는 한 톨도 없는 세상에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해집니다.
4월의 행사는 북토크와 글쓰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4월 잡담밤에서는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이하여 장애인권과 동물권의 교차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하고 계신 '우정규 활동가'와 동물해방물결의 '이지연 대표'가 함께 합니다. 곧 누리집에 올라갈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소식지 말미에 실린 글은 밴드 '양반들' 리더인 전범선의 칼럼 <전범선의 풀무질>입니다. 한 번씩 읽어보시고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바꿀 불씨는 풀무질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은 비록 작은 불씨지만 2023년을 활활 태울 거대한 불길이 되기 위하여, 오늘도 풀무질!
풀무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