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풀무질입니다!
불티 여러분, 날이 부쩍 추워졌는데 건강하신가요? 가뜩이나 환절기는 면역력도 약해지고 쉽게 감기가 걸리는데, 이번 환절기는 정말 스위치를 똑딱이듯 급격하게 바뀌네요. 매일 날씨와 기온이 달라져서 무슨 옷을 입고 나가야 할 지도 혼란스러워요. 꼭 여러 겹의 얇은 옷을 챙겨서 추위를 단단히 대비합시다!
썼던 글을 지우고 다시 시작합니다. 너무 황망하여 어떤 말하기가 힘드네요. 금요일에 소식지를 쓰고, 주말 내내 너무 많은 말과 글을 보았습니다. 현장에 모인 사람들의 목적이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서였건, 또 다른 이유였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고통과 그들이 마땅히 누렸어야 할 '지금 이 시간'에 앞서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사람과 생명입니다.
시스템은 세계에 도사린 불확실한 위험을 최대한 통제하고,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 첫째입니다. 사회에는 여러 시스템이 있지만 가장 근간에는 '국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는 우리가 당연히 있으리라 믿었던 '국가'가 부재했습니다.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진심으로 애도하고, 국가에게 요구합시다. 그 자리에서 발을 뺐던, 국민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있어야 하는 국가를 다시 불러냅시다.
끊임없이 불안하고, 부유하는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표를 잃고 의존할 대상을 찾아 헤맵니다. 어지러운 정국과 위험이 넘치는 세계에서 인간 사회와 관계의 뿌리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얕은 뿌리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뽑히기 마련입니다. 사회적 신뢰는 점점 가늘어져 가고, 오늘과 내일의 생존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경제적 가치가 초 단위로 뒤집힙니다. 이런 세태에서 급격히 늘어가는 소비 문화는 사회적 침몰의 원인이 아닌 결과입니다. 미래를 견디고 기다리기에는 위험과 불안이 너무 커서 당장 현실에 잡히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풀무질은 책을 팔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을 팔고 있습니다. 당장의 불안을 위로해주는 감성 에세이도 없고, 지금 뭔가 하고 있다는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자기계발서도 없습니다. 시험을 위한 수험서도 없어요. 뿌옇게 안개가 낀 앞날의 '정답'을 말하는 책은 단 한 권도 없습니다. 단지 인류와 지구가 지나온 발자국을 기록한, 지금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나도 잘 모르니 함께 고민하자는 책들 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위험이 시시각각 덮쳐오는데 쓰잘데기 없고 무사태평하고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바로 여기 모인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들이 뿌리였기 때문에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고, 그리고 아직도 더 깊이 뿌리내리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최근 한겨레신문에 실린 풀무질 소개글을 덧붙입니다. 저는 이런 마음으로 책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 세상에 걷어차인 것들이 어깨를 맞댄 곳,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64632.html?_ga=2.171831783.697024569.1667046952-1270839951.1611888182)
한 가지 더, 중요한 공지를 드립니다. 11월 7일 부터 12일까지, 풀무질은 잠시 문을 닫고 휴식을 취합니다. 아직 많이 달려야 하고, 할 일이 많은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풀무질 스스로에게도 그간 열심히 달렸고 노력했다는 인정과 다독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여러분께서 풀무질을 소중히 여겨주시는 만큼 더욱 환대하고 일궈나가기 위한 잠시 멈춤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기간만큼은 잠시 스위치를 끄고 최대한 명상과 환기의 시간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휴식기간이지만 11월 9일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리는 '소동제'에 부스로 참가하니, 혹 풀무질이 그리우신 불티님이 계시다면 9일에 성균관대학교 명륜캠퍼스를 방문해주시면 만나실 수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소동제는 소수자 정체성을 공부하는 동아리들의 작은 축제입니다. 인스타그램 @skku_minorfesta 에서 관련된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1월 12일에는 '2022 대전서점대전'에 연사로 참여합니다. 어째 휴가를 내놓고 너무 여기저기 나타나는가 싶지만, 그래도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참, 소식지 아래에 행사 포스터가 없다고 너무 놀라지 마세요! 11월에도 재미있는 행사들이 기획되어 있지만, 홍보물 제작이 조금 늦었습니다. 북토크도 있고, 11월 잡담밤에는 전범선 님의 신보 음감회를 할 계획입니다. 추후에 누리집과 SNS에 순차적으로 올라갈 예정이니 지켜봐주세요!
소식지 말미에 실린 글은 밴드 '양반들' 리더인 전범선의 칼럼 <전범선의 풀무질>입니다. 한 번씩 읽어보시고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바꿀 불씨는 풀무질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은 비록 작은 불씨지만 2022년을 활활 태울 거대한 불길이 되기 위하여, 오늘도 풀무질!
2022년 10월
명륜동 지하 1층에서
불꽃의 작은 온기를 담아,
풀무질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