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이 지구의 완전한 모습을 사진으로 처음 본 것은 1972년이었다.
아폴로 17호의 승무원이 찍은 이 지구의 사진은 지구의 문화를 바꿔놓았다. 인간은 그 전부터 우리가 속한 태양계와 우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지구의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1972년 인간은 그들이 사는 세계를 처음으로 보았고, 그 세계는 작고,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는 하나뿐이고, 이 작은 별에서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고 있었다. 새로운 관점은 인류를 변화시켰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푸른 별의 경이로움이었다.
풀무질이 처음 인수되어 막 시작하는 시기에 당시 노원우주학교의 관장이었던 이정규 씨가 풀무질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도 푸른 별에 대한 경이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풀무질에서 푸른 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주를 연구한 그는 이 푸른 별이 얼마나 놀라운 우연과 불가능의 산물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했다. 지금까지의 관측 결과로만 보면 우주에서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가진 별은 없다. 행성의 대기와 생명의 조건은 행성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 크기가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태양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뜨겁거나, 멀어서 차갑지도 않아 적당히 미지근한 ‘골디락스’ 영역에 있다. 지구가 공전하고 있는 태양의 조건도 매우 까다로운데, 아직까지 같은 조건의 항성이 발견된 사례가 거의 없다. 태양계의 구성도, 태양이 위치한 은하계의 조건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체 거주가능의 조건을 들자면 끝이 없지만,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달의 존재였다. 달의 형성은 원시지구와 다른 행성간의 충돌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거대 충돌이 지구의 빠른 자전과 자전축 기울기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는데, 빠른 자전은 지구의 일교차를 줄여주었고 적당한 자전축 기울기는 계절별 기온차를 줄여주었다.
이정규 관장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느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반도를 찾아오는 철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봄철 철새들은 겨울에 따뜻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아 북반구에서부터 쉬지 않고 한반도까지 날아온다. 많은 철새들에게 한반도는 다른 곳까지 가기 위한 기착지이다. 하지만 긴 여행을 마치고 허기진 상태로 서식지에 도착하면 파괴된 습지와 갯벌, 그리고 개발된 도시만이 그들을 기다릴 뿐이다. 결국 그들은 한반도에서 먼 거리를 다시 날아갈 힘을 얻지 못하고 아사한다. 이렇게 멸종의 길을 걷는다. 그의 강연은 자연의 놀라움,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도가 담겨있었고, 풀무질은 그 날부터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알리기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레이철 카슨은 푸른 별의 바다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는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연에서 놀라움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역작 <침묵의 봄>은 살충제와 환경파괴에 대한 무서운 경고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모든 것이 복합하게 얽혀있는 자연생태계에 대한 예찬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크면서 서서히 잃는 어린아이의 순수함, 그리고 그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의 경이로움을 다시 심어주고자 했으며, 출간이 되고 얼마 되지않아 암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기까지 이를 위해 글을 쓰고 미국 의회에 증언하였다. 그리고 이 책은 미국에서 환경과 과학기술에 대한 관계와 개념을 재정의했으며 환경운동을 시작하는 데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의 책으로 인해 전 세계가 최근에 기념한 지구의 날(4월 22일)이 제정되었다.
우리에게 경이로운 것은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이로움이 소중하다.
카카포는 제일 좋아하는 리무 열매가 자라는 해에만 교미를 한다. 문어는 잠을 잘 때 수면상태에 따라 위장색이 바뀌는데, 과학자들은 이를 보고 문어가 꿈을 꾸는 것이라고 한다. 모든 동물이 세계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보다 몸집이 가볍고 신진대사량이 높은 동물들은 정보의 처리능력이 더 빠르기 때문에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간다. 인간에게 있어 그들의 세상은 끝나지 않는 슬로우 모션이다.
산림청에서는 식목일에 전체 산림의 약 70%가 노후 되었다며 이를 베고 묘목을 심는 방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노령목이 탄소흡수원으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주장의 신빙성은 제쳐두고서라도 이는 자연을 도구로 바라보아야만, 그리고 다른 생태계와는 단절된 개체로 인식을 해야만 나올 수 있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놀랍다. 그리고 우리가 넘어야만 하는 산은 기후위기만이 아니라 생태위기이기도 하다. 나무를 탄소흡수원의 기능으로만 바라보는 행위는 한반도 자연생태계의 가장 큰 위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없이 노령목을 바라보면 숲을 보기 힘들다. 나무만 보일 뿐이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 우리는 왜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가 힘든 지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경이로움에 빠질 시간이 없다. 도시와 노동이 사람들의 잠을 가져갔으니 꿈을 꾸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버트란드 러셀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근로가 미덕이라고 믿는 사회의 궁극적인 해악이다. 하지만 노동시간만이 문제는 아니다. 도시에서의 삶은 자연적인 삶과의 단절을 요한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조차도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모른다. 소수가 다수를 먹여 살리는 구조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지 않기때문에 기후위기를 몸소 체감하기 힘들다. 경쟁사회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개개인을 경쟁의 대상으로 만들며, 이러한 믿음은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까지 뭉게버린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증식과 경제성장과 관련 없는 것에 시간과 애정을 쏟는 ‘불필요하고 비이성적인’ 행위를 ‘루저’로 분류한다.
우리의 교육체제 또한 바뀌어야 한다. 외우는 것이 정답인 세계에서는 나만의 해결책보다는 이미 제시되고 증명된 방안에 의존하게 한다. 하지만 이제 곧 도래할 파괴적인 기후위기는 그 어떤 사회도 경험해본적이 없으며, 이러한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존재하는 사례는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이다.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우리 사회는 체제 밖의 상상력과 새로운 해결책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관계 또한 재정의되어야 한다. 레이철 카슨은 살충제가 곤충만 죽인다는 생각의 어리석음을 알고 있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생화학적 진화의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에, 하나의 작은 개체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유독한 물질은 다른 유기체에게도 해를 끼치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은 카르마라는 개념과도 일치한다. 모든 먹이사슬이 연결되어있는 작은 푸른 별 안에서 우리가 남에게, 그리고 자연에게 미치는 해는 당연히 우리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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