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환의 멸종반란] 지구를 위한다는 셀런버거만의 착각
웃기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바로 마이클 쉘런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다. 각종 미사여구와 찬사를 덧칠한 채 진열되었다. 쉘런버거는 그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인용하고 입맛에 따라 감탄고토한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반대편의 입장을 왜곡하거나 소수가 사용하는 주장을 반박하여 논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허수아비 공격 논증이다. 기후 운동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 중에서 30년 안에 지구가 완전히 거주 불능하게 바뀌고 인류가 멸종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이렇게 허상만 주야장천으로 쥐어박고서는 싸움에서 이겼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먼저 책의 입장이 가진 논리적 오류를 반박해보자. 책은 기후위기로 인한 제6차 대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상황이 제6차 대멸종으로 규정될 수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심각한 수준의 멸종이나 생물 다양성 감소가 이뤄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인간에 의한 것인지다. 지난 100년간 멸종한 척추동물은 200종으로 이 멸종 속도는 기준치의 100배이며, 수많은 포유류와 새, 그리고 식물 종이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그리고 이것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인류의 무분별한 사냥, 포획과 어획, 토지개발과 벌목, 땅, 물 그리고 공기의 오염으로 인해 생긴 결과이다. 우리는 이를 생태위기로 규정할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은 지금 아마존이 불타고 있는가, 북극곰이 굶어 죽고 있는 것이 사실인가가 아니라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위기가 실존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사람들이 겁을 먹을 만큼 재앙적인 상황을 초래할 것이 예상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막기 위한 길을 가고 있는지여야 한다. 이제는 인간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의 평균 온도를 높인다는 가설은 정설이 되었으며, 기후위기가 자연재해를 더욱 심각하게, 그리고 더 많이 일으키는 데 일조한다는 데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이를 기후위기로 규정할 수 있다.
저자는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이것이 미칠 영향이 재앙적일 것이라는 가정을 부정하는 데, 마치 이 책 한 권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책과 논문, 연구와 과학적 증거가 무용지물이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다. 그러면 2015년 파리에서 모인 196개국이 모여 약속한 기후협정은 뭐가 되는가?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지구 온도 2도 상승이 인류와 생태계에 미칠 파괴적인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낸 2천 장이 넘는 5차 평가보고서와 이를 위해 모인 전 세계 831명의 분야별 전문가와 인용된 9,200개의 참고문헌은? 2018년 인천에서 공개된 IPCC 1.5도 특별보고서에서는 온도상승을 1.5도 막으려면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없으며 그렇지 못하면 되돌릴 수 없는 심각한 생태계 파괴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보고서는 ‘피드백 루프’와 ‘티핑포인트’ 즉 한번 시작되면 멈출 수 없이 가속화 될 지구온난화에 대해 경고한다. 이 문장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책에서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기후패닉’을 지금까지 담당한 주축은 목소리가 큰 활동가들이 아니라 이들을 애초에 거리로 나가게 한, 말 조심하고 시간을 들여 연구하는 과학자들이다.
사람들이 책을 신뢰하는 이유는 저자가 신뢰할만한 사람이거나 그 분야에서의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그의 약력이 암시하는 바와는 그는 대학 졸업 이후 여러 홍보 마케팅 회사를 설립하여 여러 회사의 대외적 이미지를 관리하고 시장조사를 하며 돈을 번 뛰어난 선동가이다. 쉘런버거는 본인이 기후정치판의 ‘약자’ 혹은 ‘여론에 돌아선 반항기 있는 아이’로 자기 홍보를 하면 동정과 지지를 더 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책으로 그를 처음 접하는 우리는 그가 이러한 기후부정론적이고 기술만능주의적인 입장을 펼치기 시작한 2003년부터 이미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비판되었으며 그의 글은 가짜 혹은 편향된 정보에 따른 선동 글로 치부되었다는 사실을 알기가 힘들다. 주요 환경단체에 대한 그의 근거 없는 비방을 똑같은 방식으로 그에게 적용해보자면, 쉘런버거는 핵발전과 석유산업, 육류산업에서 막대한 돈을 지원받아 그들의 논리를 퍼트리고 있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쉘런버거와 같이 나도 별다른 근거 없는 심증임을 밝힌다.)
쉘런버거는 2008년 타임스 선정 환경 영웅이다. 물론 이는 35명 중 하나일 뿐이며 2007년 환경 영웅 중 한 사람이 이명박이었다는 사실만 봐도 그 선정기준이 상당히 의심쩍으나 논거를 이어나가기 위해 이것이 대단한 영예라고 쳐 보자. 권위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명예와 수상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쉘런버거가 아니라 정 반대에서 급진적 환경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레타 툰베리부터 추앙해야 할 것이다. 툰베리가 수상한 모든 것을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쉘런버거가 2008년 타임스 선정 환경 영웅이었다면, 그레타 툰베리는 타임스가 선정한 2019년 올해의 인물이었으며 역대 최연소였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이 인기일까?
이 책을 찬양하는 영문 기사의 대부분은 환경 로비 단체인 환경진보(Environmental Progress)에서 나온다. 선동의 프로답게 환경진보는 진보와는 정 반대 진영에 자리 잡고 있으며 쉘런버거가 창립자이자 대표로 있는 단체이다.
하지만 책이 잘 팔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축소하고 기술적인 해결책을 통해 제안하는 책의 출간은 기후위기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환호할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전 세계 모든 전문가가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비관적인 상황에서 위험이 실존하지 않으며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체제, 방식과 습관을 바꾸지 않고 기술발전을 통해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매우 솔깃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수많을 활동가를 포함한 시민들이 현재 겪고 있는 기후 불안과 기후 우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방향에 대한 성찰과 고민 없이 기술발전이나 기술적 해결책에 의존하는 것은 폐암 말기 환자가 담배를 끊기보다 신약개발이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과도 같다. 일단 담배부터 끊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생태위기이기도 하다. 이 비유로 치면 담배 말고도 끊을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소식이 실존하는 위협에 대한 회의감이나 인간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안전 불감증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가장 중요한 탄소 배출 감소를 실현할 수 없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쉘런버거 자신이다. 책에 나온 내용을 논리적 오류, 거짓된 정보, 부분적인 정보의 인용으로 인한 왜곡 등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모두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 책의 분량과 맞먹는 글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그것을 전부 적고 싶으나 그럴 수 없으니 직접 책을 읽으면서 비판적 사고를 하기 바란다.
가짜정보가 넘치는 사회에서 어떤 것이 신뢰할 만한 정보인지를 알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책이나 기사 같은 문자 기반 매체보다도 이를 2차 제작하여 더 쉽게 퍼져나가는 영상 매체이다. 우리의 의식을 위한 싸움은 오래되었지만, SNS와 유튜브의 확산으로 인해 전보다 교묘하고 빠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넘쳐나는 정보를 분별하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비판적 사고와 같은 여러 도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독서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이것을 다른 사람과 토론하거나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 또한 중요하다. 그래서 풀무질 기후위기 읽기 모임을 시작했고, 이것이 멸종반란으로 이어졌던 것인데, 이 책을 보니 모임을 다시 시작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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