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풀무질입니다! 안녕하세요. 풀무질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세계 가정의 날처럼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기념하는 날들이 포함된 탓이겠지요. 이런 기념일이면 떠오르는 '가정'의 모습은 어떤가요? 모두 엇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른바 '정상가족'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완전하게 부합하는 '정상가족'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정상가족'이 사실은 도달하기 매우 어려운 형태라 이런 저런 기념일을 만들어 자꾸 틀을 만들고 목표를 세우는 걸지도 모릅니다.
'정상 가족의 달' 가운데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5월 17일)'이 들어있는 것은 묘한 쾌감을 줍니다. 남성과 여성으로만 나누어진 이분법적 정상-가부장세계에서 '성소수자'는 그야말로 '정상성'의 외부로 밀려납니다. 그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틀에 박힌 정상성의 한 켠을 허물어야 합니다. 닿지 않는 정상성에 도달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대신 그 바깥으로 나아가기로 마음먹는 순간, 우리 앞에는 정상성의 벽에 가려져 있던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 다양성과 공존의 세계가 드러납니다. 새로운 형태를 가진 가족의 모습이 펼쳐지고 진정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기대어 살아가는 공동체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가정(家庭)의 두 한자는 모두 '집-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전자로 이어진 관계가 아예 의미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정'을 이루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핏줄보다도 '공간을 공유하고 함께 공존하기'라는 뜻입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바로 곁의 다른 존재와의 끝없는 타협과 양보, 이해가 필요합니다. 모든 요소가 동반되는 깊은 관계는 유전자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상대를 직면하고 나를 돌아보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깊은 관계가 집 바깥으로, 광장으로 나갈 때 우리는 시민이 되고 보다 큰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만날 수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가정의 달을 기념할 수 없는 수많은 '비-정상 가정'이 존재합니다. 현실적인 여유가 없어서,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해서, 아니면 함께 기념할 이가 곁에 없어서,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겁니다. 이들을 포용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의 책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 벌어졌던 또다른 투쟁들을 기억합니다. 화섬식품노조의 단식투쟁, 전국장애인철폐연대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촉구 시위, 2022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의 기념집회, 그리고 아직도 거리와 온라인 곳곳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여러 활동가들. 그들이 있어 우리는 더 큰 가정을, 더 큰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풀무질은 5월에 종평등 세미나를 무사히 마치고 6월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워크숍은 '강유가람 감독과 함께하는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입니다. 작품을 만드는 워크숍이다보니 참여 인원을 10명으로 제한한 탓에 현재는 인원이 모두 찼습니다. 혹시라도 취소가 생겨 자리가 난다면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공지할 예정이니 관심있는 분들께서는 풀무질 인스타그램(@poolmoojil)을 주시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6월 말에는 '과학책방 갈다'의 이명현 대표님과 함께하는 과학 책읽기 세미나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과학책방 갈다는 삼청동에 있는 과학 전문 책방입니다. 종로구의 두 독립책방이 함께 진행해보는 프로젝트 입니다. 선착순 서른 분께 교재를 증정하오니, 서둘러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현장 참여 우선 배부)
이외에 당장 홍보물이 나오지는 않았어도 페미니즘, 동물권과 관련한 북토크가 준비중에 있습니다. 자세한 행사 일정과 내용은 풀무질 누리집( https://poolmoojil.com/)에 가장 먼저 올라오고, 풀무질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차례로 공지됩니다. 예전처럼 일주일 내내 행사를 숨가쁘게 열기보다는 행사 하나하나의 질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깊은 고민과 토론을 걸쳐 기획하고 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행사 외에도 여름에 한정한 작은 이벤트들도 기획 중이니 앞으로도 꾸준한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좋은 소식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간 엄두를 내지 못했던 풀무질 유튜브 채널을 활성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활성화하는 유튜브는 풀무질뿐만 아니라 두루미출판사, 동물해방물결의 콘텐츠들도 함께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채널명도 '풀무질'에서 '안녕! 두룸씨'로 변경하고, 풀무질에서 진행한 행사를 요약한 짧은 편집본을 올렸습니다. 아쉽게 행사에 참여하시지 못한 분들도 저희가 올리는 영상을 통해 조금이나마 갈증이 채워지시기를 바랍니다.('안녕, 두룸씨!'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wlaP_rePNxqRpI4NjGe_Uw)
소식지 말미에 실린 두 글은 밴드 '양반들' 리더인 전범선의 칼럼 <전범선의 풀무질>, 기후운동과 동물권 활동가 홍성환의 칼럼 <ESC: 비건하고 있습니다>입니다. 한 번씩 읽어보시고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바꿀 불씨는 풀무질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은 비록 작은 불씨지만 2022년을 활활 태울 거대한 불길이 되기 위하여, 오늘도 풀무질!
2022년 5월
명륜동 지하 1층에서
불꽃의 작은 온기를 담아,
풀무질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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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질 5월의 추천도서>
*풀무질은 매 주 한 권씩 책을 추천합니다. 5월의 추천도서 네 권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책 설명이 함께 올라와 있는 도서 구매창으로 연결됩니다. |
<풀무질 6월의 행사>
풀무질에서는 사유의 불을 지피기 위해 여러 강의와 세미나, 북토크를 기획합니다.
모든 강의와 행사 정보는 풀무질 누리집과 SNS에 상세히 나와있습니다.
↓클릭하시면 누리집과 SNS로 연결됩니다.↓ |
*각 포스터를 클릭하시면 행사 소개창으로 연결됩니다. |
<풀무질 읽기모임>
풀무질에서는 매 달 두번, 읽기모임을 진행합니다.
첫 번째 금요일: 동물해방 읽기모임
세 번째 금요일: 페미니즘 읽기모임
*각 이미지를 클릭하면 도서 구매창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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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동물해방 읽기모임 선정도서]
향기, 은영, 섬나리 저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
[6월 페미니즘 읽기모임 선정도서]
크리스티나 램 저, 강경이 역
<관통당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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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풀무질] 죽음의 굿판
김지하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아니, 그는 영육일치를 믿는 일원론자였기 때문에 “떠났다”는 말은 옳지 않다. 김영일이라는 사람이 한울로 돌아갔다. 다다음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꾸벅 인사했다.
나는 김지하가 생각났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첫 모습은 2012년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이다. ‘오적’과 ‘타는 목마름’을 외치던 저항시인이 이상해졌다고 치부했다. 고문 후유증 때문인가? 그래도 원수의 딸과 화해하는 장면은 인상 깊었다. 딱 그 정도였다. 나는 아직 그의 생명사상을 몰랐다.
문재인의 사람인 줄 알았던 윤석열이 배신했다고 한다. 진보진영 사람인 줄 알았던 김지하도 변절했다고 욕먹었다. 1991년 5월5일 <조선일보> 칼럼 때문이다.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경찰 폭력으로 대학생이 사망하자 당시 운동권은 연이어 분신자살했다. 60일 동안 13명이 죽었다.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라고 경고했다. 한 개인의 생명이 정권보다 중요하며, 죽음이 아닌 삶이야말로 참된 운동의 출발이라고 썼다. 재야는 분개했다.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그가 역적으로 몰렸다.
김지하는 세상을 둘로 보지 않았다. 하나로 봤다. 민주와 독재, 진보와 보수를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았다. 빛이 어둠을 정복하리라 믿지 않았다.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당신들의 그 기괴한 이원론이다. 당신들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인정하고 있다. 당신들의 결정적 파탄의 증거다. 묻겠다. 당신들의 신조는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모든 죽음의 굿판은 이원론을 전제한다. 육체의 죽음을 정당화하려면 영혼의 분리를 믿어야 한다. 타자의 죽음을 정당화하려면 그들을 악마화해야 한다. 김지하는 감옥에서 생명사상을 싹틔웠다. 시멘트 틈으로 자라는 풀에서 자신을 보았다. 박정희를 용서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죽음을 듣고 “인생무상. 안녕히 가십쇼. 나도 곧 뒤따라갑니다” 하고 웃었다. 김지하의 저항은 투쟁이 아니다.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다. 살고 살리는 것이다. “흰 그늘”로 비유되는 그의 세계관은 역설적인 통일이다. 빛과 어둠, 선악이 공존하는 한 생명으로서 살다 가는 길이다.
그래서 일찍이 <한살림 선언>(1989)을 썼다. <공산당 선언>(1848)의 유물사관은 진보와 투쟁을 요구한다. 끝없는 피아식별, 이분법과 정반합을 낳는다. 죽음의 행진을 진보로 찬미한다. 서학의 뿌리 깊은 이원론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살림은 동학의 일원론을 계승했다. 삶의 행진은 진보와 투쟁일 수 없다. 순환과 조화다. 그래서 생명운동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프랑스혁명에서 비롯된 좌파/우파의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다. 모두가 한 우리, 한 살림이라는 자각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후위기, 생명위기를 살고 있다. 김지하의 “젊은 벗들”이었던 86세대가 권력을 휘두른다. 나는 묻는다. 인류세의 지하(地下)는 누구인가? 비인간 존재다. 매년 700억명 넘게 도살되는 동물이다. 매일 150종 가까이 멸종되는 생물이다. 성장과 진보의 이름으로 파괴되는 자연이다. 그들에게 공정과 정의는 어디 있는가? 토착왜구와 종북좌파가 무슨 소용인가? 조국과 한동훈이 뭐가 다른가? 결국 다 지상의 인간끼리 편 가르고 죽이는 놀음이다.
죽음의 굿판은 별게 아니다.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듯이 사람과 자연을 분리하는 짓이다. 지하에 있는 생명을 말 그대로 지옥에 가두고, 사람만이 지상과 하늘을 노니는 것이다. 아직도 진보를 자처하는 어르신들께 나는 젊은 벗으로서 말씀드린다. 딱 내 나이만큼 오래된 김지하의 조선일보 칼럼을 한겨레에 옮긴다. “당신들 운동은 이제 끝이다!” 좌우와 선악을 초월하는 생명운동만이 한겨레, 한우리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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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환의 ESC: 비건하고 있습니다] 꽁꽁 얼렸다가 녹인 두부 먹어봤나요?
나는 두부에 빠졌다. 두부에 대한 나의 사랑을 공개한다.
내가 두부를 사랑하는 이유는 두부가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두부는 질릴 일이 없다. 두부는 응고한 콩물을 압착하는 강도에 따라 단단하게도 나오고, 연하게도 나온다.(단단하면 부침용, 부드러우면 찌개용이라는 건 국룰!) 또한 만드는 방식에 따라 몽글몽글한 순두부가 되기도, 크렘브륄레 속처럼 입에서 사르르 녹는 식감의 연두부가 되기도 한다. 그뿐인가. 튀기면 유부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식재료가 된다. 유부조림이나 음식의 고명으로 띄워 먹는 유부 대신 두부를 쓴다고 생각해보자. 맛과 식감 모두 다르다. 최근 한 식품 브랜드에서 두부면 파스타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원재료는 같지만 어떤 제조 과정을 거치냐에 따라 다양한 식감으로 즐길 수 있는 식재료가 두부다.
다양한 두부를 경험해왔지만, 나는 아직도 못 먹어본 두부가 많다. 최근 지인과 두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가 두부를 얼려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명 언두부. 두부를 얼렸다 녹이면 두부에 있던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단백질이 응고되고 식감은 더 쫄깃해진다. 수분이 빠져나가며 구멍이 송송 생겨 양념도 더 잘 스며든다고 한다. 그는 왜 이 사실을 지금까지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는지!(물론 물어본 적도 없지만.) 다음날 두부를 사서 무작정 냉동실에 넣었다. 그런데 실수로 포장된 채로 냉동실에 넣어 두부를 보관하는 물까지 같이 얼려버렸는데…. 다시 녹이면 지인이 알려준 그 언두부 맛이 날까 궁금하다. 두부를 삭혀 만들어 냄새가 고약하다는 취두부도 있다. 맛이 궁금하지만 굳이 먹어보고 싶지는 않다. 콩을 삶을 때 태워서 맛을 낸다는 탄두부는 또 어떤 맛일까? 콩으로 만든 누룽지 같을까? 아주 궁금하다.
동양, 특히 동아시아에서 오랜 시간 두부를 사랑해왔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식으로 두부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각종 소스에 버무려 먹거나 달게 양념해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채소를 섞어 전처럼 부쳐 먹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반찬으로도 많이 활용하고, 국에 넣는 재료로 많이 쓴다. 동남아시아에서도 두부를 즐겨 먹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카레에 넣거나 튀겨서 먹는다. 필리핀에서는 아침에 연한 두부에 흑당 시럽을 뿌려 먹는다는데, 이 또한 색다르다.
두부는 최고의 대체육이기도 하다. 대체육이라고 하면 보통 모양이나 식감을 고기와 비슷하게 만든 현대식 콩고기나 세포 증식을 통해 만든 배양육을 떠올리지만, 쉽게 말하면 고기를 대체하는 식재료다. 두부는 퓨전 요리에서 이미 대체육의 기능을 수행하며, 케밥·샐러드·포케 등에 고기 대신 두부가 들어간다.
두부의 다양한 활용은 근현대 비건 문화의 산물은 아니다. 두부는 육식을 금하는 동아시아 불교에서 오래전부터 중요한 단백질원으로 활용됐다. 과거 한국과 일본에서 불교 승려들은 고기를 대신해 두부를 먹었다. ‘비거니즘’이라는 단어는 오래되지 않았어도 채식주의의 역사는 깊기에 고기를 대신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여러 다른 문화권에서 이미 존재해왔다. 중동에서 즐겨 먹는 팔라펠이나 인도네시아의 템페를 보라. 현대의 콩고기가 있기 이전에 쫄깃쫄깃한 유부, 건두부와 두부피가 있었다.
하지만 두부를 대체육으로만 규정할 순 없다. 대체육은 채식 재료이면서, ‘고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체육은 식재료로서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기보다, 고기의 맛, 모양, 식감을 따라 하는 재료에 가깝다. 어떤 면에서는 고기를 ‘능가’할 수 없다.
그런데 두부는 두부다. 두부를 다른 음식에 비교하는 것은 두부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두부는 고기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단백질원이면서 동시에 고기를 따라 하고자 한 노력이 전혀 없는 고유의 음식이다. 팔라펠도, 템페도 마찬가지다. 고기와 식감도, 맛도 전혀 다르지만, 그 고유의 맛을 즐기기에 채식 요리에 자주 사용된다. 이제 대체육의 개발도 ‘고기와 비슷하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조상의 지혜가 담긴 두부와 같이 시대를 초월하는 고유의 음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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